긴 시간 유지해온 것들에 의구심을 갖게 되는 시기가 있다. 오래된 것들엔 그것만의 관성이 있어, 이미 이어져 오던 것을 멈추거나 방향을 달리하는 일은 늘 어렵다. 그 시기가 바로 인생을 착각하게 되는 순간이다. 하지만 그 시기에 조금의 배짱은 나로 하여금 새로운 것들과 마주하게 한다.
interviewee '가라지하우스' 박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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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맛
삶의 배경이 바뀌면서 찾아온 가장 작은 변화는 무엇이었나요.
가장 작은 변화라. 어렵네요. 아, 샤워 후 바디로션을 바르지 않게 되었습니다(웃음). 피부가 건조한 편이라 서울에 있을 때는 바디로션을 바르지 않으면 당기고 간지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는데, 제주에선 한 번도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이 없어요. 이상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가장 큰 변화는요.
서울에서의 저는 굉장히 예민하고 날카로운 사람이었지만 지금의 저는 많이 유(柔)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또 시골에선 아무래도 몸을 움직일 일이 많다보니 몸무게가 20kg 가까이 빠지게 되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살이 빠진 게 아닌 독이 빠진 게 아닌가 해요(웃음). 그것이 가장 큰 변화이자 행복한 변화이기도 합니다.
그런 변화들이 삶을 대하는 태도에 어떤 영향을 주나요.
지독하게도 1인칭 모드로 살아왔던 제가 3인칭 모드로 살게 되었습니다. 그전에는 삶을 대하는 태도랄 것도 없는 것이 너무 현실에 몰두해 앞도 옆도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살았거든요. 어쩌면 보려 노력조차 하지 않았을 지도 모를 노릇이고요. 제주에 내려오고 이제야 조금씩 저 자신을 관조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나 자신’을 인식하고 발견할 수 있는 순간들이 더러 있는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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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지하우스
가라지하우스는 어떤 곳인가요.
슬프지만 이삼일의 짧은 여행으론 제주의 단편적인 부분밖엔 못 보는 게 사실이잖아요. 가라지하우스는 제가 정착하면서 느낀 제주의 다채로운 모습을 여행자들에게도 전달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출발했어요. 한 달 이상 제주에 내 집처럼 편안히 머물 수 있는 ‘한달살기 셰어하우스(shared-house)’와 천천히 제주를 느끼고픈 여행자들을 위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 중입니다.
제주에 있는 내 집 같은?
그렇죠.
the bom volume 04 <작고도 큰 발견들> '하루 이틀의 마음일지도 모르겠지만' 중에서
글 라어진 / 사진 김보경, 가라지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