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화제의 영화가 개봉되었습니다. 일본의 미생이라며 이미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한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를 말하는 것입니다. 회사에 보탬이 되고 싶은 생각은 있으나 잘 안 된다거나, 3개월째 초과근무가 150시간에 달한다거나 하는 독백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많은 직장인들이 한 번쯤은 처해봤을지도 모르는 처참한 현실을 조명하고 있습니다.
.죽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깨닫는 사람이죠)자살시도로 인해( 그 위험한 순간에도 넘어지고 난 뒤엔 하늘을 보며, 주인공은 심지어 그 황당한 제안을 수락하고, 기억도 희미한 초등학교 시절의 동창은 난데없이 마트의 운반용 수레를 타자고 제안하며. 는 꽤 많은 일본 영화가 그렇듯 만화적인 우연과 감성을 도구삼아 현실과의 거리를 유지한다는 점입니다>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미생과 다른 점이라면
.몇 가지 특기할만한 장면과 대사를 간추려 적어 봅니다
1. “살기 위해 일하는 거라면, 난 살아있는 거라고 할 수 있을까.”
초과근무가 3개월 연속 150시간 이상(월 20일씩 일한다면 평균적으로 7.5시간 초과근무)이라는 독백에, 지하철이 들어오는 철로로 쓰러지려는 주인공의 심정이 압축적으로 드러나는 말입니다. 공무원을 택하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슬로건처럼 외치는 “저녁이 있는 삶”과도 연관된 말일 것 같습니다. 주인공은 회사에서 인격적인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매일 밤늦게 퇴근하며, 부모님이 보내준 채소나 과일들은 먹을 시간조차 없어서 집에서 썩히고 있지요.
이러한 말은 주인공이 다니는 회사에서 아침마다 외치는 사훈에서도 드러납니다. “감정을 버려라. 꺾일 것이 없다면 버텨낼 수 있다.”고 제창하게 하는 회사죠. 인간이기 때문에 당연히 가지는 것을 버리라고 한다면 사람을 사람답게 대하지 않는다는 뜻이고, 이를 몇 달이나 사훈이라며 외친 주인공에게, 내가 인간으로서 살아있지 않고 있다는 주인공의 생각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워라밸(Work-Life Balance)이란 말과 통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2. “이 정도도 못 버티면 어디 가서든 사람 구실 못해. 결국 다 팽개치고 도망가는 거잖아.”
흔하게 듣는 말 같습니다. 주인공을 괴롭히는 부장은 주인공이 퇴사한다는 소리에 회사 내규와 각종 불이익을 들이밀며 위협하지만, 주인공은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차후 취업에 불이익이 될 수 있다는 말까지도 괜찮다고 하자 사람 구실 이야기를 꺼내죠. 일이 힘들 순 있습니다. 초년생이나, 새로운 도전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낯선 업무에 적응하느라 더더욱 힘들 겁니다. 인내심을 갖고 버텨야지요. 하지만 그 인내심은 인간으로서 응당 갖추고 있는 존엄성을 훼손할만한 모욕을 참아내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괴롭힘을 견디다 못한 주인공이 재차 자살을 시도하자 친구는 이렇게 말합니다. “네 인생은 너의 것만이 아닌, 네 인생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을 위한 인생이기도 해.” 자신의 인생을 걱정해주는 사람들을 위해 행복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뜻으로 말한 것이겠지만, 반대로 내 인생을 생각해주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헌신해야 하느냐는 물음으로 바꿀 수도 있겠습니다.
3. “인생이란 살아있기만 하면 어떻게든 풀리는 법이다.”
정리해고를 당해 귀농한, 평상시엔 주인공의 괄시의 대상이었던 아버지가 한 말이죠. 저도 처음 듣고는 “역시 가볍게 보는 영화라 태평한 말을 하는구나?”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영화에 나온 대사를 더 얹어 생각해본다면 조금은 다르게 느껴질 겁니다. 이를테면 회사 관두는 게 그렇게 어렵냐는 질문 말이죠.
약간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겠습니다. 사실 3년 전에 죽은 것으로 보였던 친구에게는 쌍둥이 형제가 있었습니다. 그 쌍둥이 형제가 과로와 사내 괴롭힘으로 인해 자살한 기억이 있어서 주인공을 못 본체 할 수 없었던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주인공에도 물어볼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로 회사 관두는 게 죽는 것보다 어렵냐는 질문을.
본인의 인생을 항상 응원했던 부모님을 만나고 상경한 주인공은 친구를 만나 말합니다. “불러놓고 미안하지만, 잠깐만 기다려 줄래?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라고. 이것은 회사를 관두는 게 죽는 것보다 어렵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기도 하겠고, 이제는 본인의 가능성을 믿을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4. “전해달라더군요. 고맙다고.”
회사를 관두고, 친구가 나고 자란 고아원을 찾은 주인공은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친구가 오히려 자신에게 고맙다는 말을 남긴 것을 듣고 의아해합니다. 부모님이 주인공에게 건넨 “네가 어떤 어른으로 성장할지 궁금했다”는 말과도 통하는 말이며, 네 인생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을 위한 인생이란 말과도 연결되는 말입니다. 친구가 자기로 인해 스스로의 인생을 소중히 여기게 된 것은 분명히 큰 위로였을 겁니다. 작중에서 똑같은 이유로 쌍둥이 형제를 잃은 인물에게는 더더욱.
저는 사회 초년생의 입장에서 영화가 상당히 괜찮았다고 생각합니다. 작품성을 떠나서, 힘들어하는 직장인 친구들을 위로하기 좋은 영화라는 점에서요. 학교를 졸업하고 여러 다양한 길을 걷는 친구들이 겪는 고통과 슬픔에 공감하지 못한다는 게 내내 안타까웠습니다.
삶을 영위하기 위한 일자리임에도 불구하고, 일자리에서의 고난은 종종 삶의 다른 영역을 침범하곤 합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종사하는 업종이 다르면 위로하거나 공감해주기가 상당히 어렵죠. 기회가 된다면 힘들어하는 친구와 함께 가서 다시 한 번 보고 싶은 영화였습니다.
요약합니다.
이 영화에 별점을 준다면, 요만큼!
★★★★☆
이 영화를 추천합니다(예/아니오)
예!
초과근무가 3개월 연속 150시간 이상(월 20일씩 일한다면 평균적으로 7.5시간 초과근무)이라는 독백에, 지하철이 들어오는 철로로 쓰러지려는 주인공의 심정이 압축적으로 드러나는 말입니다. 공무원을 택하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슬로건처럼 외치는 “저녁이 있는 삶”과도 연관된 말일 것 같습니다. 주인공은 회사에서 인격적인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매일 밤늦게 퇴근하며, 부모님이 보내준 채소나 과일들은 먹을 시간조차 없어서 집에서 썩히고 있지요.
이러한 말은 주인공이 다니는 회사에서 아침마다 외치는 사훈에서도 드러납니다. “감정을 버려라. 꺾일 것이 없다면 버텨낼 수 있다.”고 제창하게 하는 회사죠. 인간이기 때문에 당연히 가지는 것을 버리라고 한다면 사람을 사람답게 대하지 않는다는 뜻이고, 이를 몇 달이나 사훈이라며 외친 주인공에게, 내가 인간으로서 살아있지 않고 있다는 주인공의 생각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워라밸(Work-Life Balance)이란 말과 통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2. “이 정도도 못 버티면 어디 가서든 사람 구실 못해. 결국 다 팽개치고 도망가는 거잖아.”
흔하게 듣는 말 같습니다. 주인공을 괴롭히는 부장은 주인공이 퇴사한다는 소리에 회사 내규와 각종 불이익을 들이밀며 위협하지만, 주인공은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차후 취업에 불이익이 될 수 있다는 말까지도 괜찮다고 하자 사람 구실 이야기를 꺼내죠. 일이 힘들 순 있습니다. 초년생이나, 새로운 도전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낯선 업무에 적응하느라 더더욱 힘들 겁니다. 인내심을 갖고 버텨야지요. 하지만 그 인내심은 인간으로서 응당 갖추고 있는 존엄성을 훼손할만한 모욕을 참아내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괴롭힘을 견디다 못한 주인공이 재차 자살을 시도하자 친구는 이렇게 말합니다. “네 인생은 너의 것만이 아닌, 네 인생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을 위한 인생이기도 해.” 자신의 인생을 걱정해주는 사람들을 위해 행복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뜻으로 말한 것이겠지만, 반대로 내 인생을 생각해주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헌신해야 하느냐는 물음으로 바꿀 수도 있겠습니다.
3. “인생이란 살아있기만 하면 어떻게든 풀리는 법이다.”
정리해고를 당해 귀농한, 평상시엔 주인공의 괄시의 대상이었던 아버지가 한 말이죠. 저도 처음 듣고는 “역시 가볍게 보는 영화라 태평한 말을 하는구나?”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영화에 나온 대사를 더 얹어 생각해본다면 조금은 다르게 느껴질 겁니다. 이를테면 회사 관두는 게 그렇게 어렵냐는 질문 말이죠.
약간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겠습니다. 사실 3년 전에 죽은 것으로 보였던 친구에게는 쌍둥이 형제가 있었습니다. 그 쌍둥이 형제가 과로와 사내 괴롭힘으로 인해 자살한 기억이 있어서 주인공을 못 본체 할 수 없었던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주인공에도 물어볼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로 회사 관두는 게 죽는 것보다 어렵냐는 질문을.
본인의 인생을 항상 응원했던 부모님을 만나고 상경한 주인공은 친구를 만나 말합니다. “불러놓고 미안하지만, 잠깐만 기다려 줄래?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라고. 이것은 회사를 관두는 게 죽는 것보다 어렵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기도 하겠고, 이제는 본인의 가능성을 믿을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4. “전해달라더군요. 고맙다고.”
회사를 관두고, 친구가 나고 자란 고아원을 찾은 주인공은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친구가 오히려 자신에게 고맙다는 말을 남긴 것을 듣고 의아해합니다. 부모님이 주인공에게 건넨 “네가 어떤 어른으로 성장할지 궁금했다”는 말과도 통하는 말이며, 네 인생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을 위한 인생이란 말과도 연결되는 말입니다. 친구가 자기로 인해 스스로의 인생을 소중히 여기게 된 것은 분명히 큰 위로였을 겁니다. 작중에서 똑같은 이유로 쌍둥이 형제를 잃은 인물에게는 더더욱.
저는 사회 초년생의 입장에서 영화가 상당히 괜찮았다고 생각합니다. 작품성을 떠나서, 힘들어하는 직장인 친구들을 위로하기 좋은 영화라는 점에서요. 학교를 졸업하고 여러 다양한 길을 걷는 친구들이 겪는 고통과 슬픔에 공감하지 못한다는 게 내내 안타까웠습니다.
삶을 영위하기 위한 일자리임에도 불구하고, 일자리에서의 고난은 종종 삶의 다른 영역을 침범하곤 합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종사하는 업종이 다르면 위로하거나 공감해주기가 상당히 어렵죠. 기회가 된다면 힘들어하는 친구와 함께 가서 다시 한 번 보고 싶은 영화였습니다.
요약합니다.
이 영화에 별점을 준다면, 요만큼!
★★★★☆
이 영화를 추천합니다(예/아니오)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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